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나는 경제발전을 '이데올로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제발전은 현실주의의, 현실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경제발전에 대한 이와 같은 사고방식에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측면이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유주의자나 보수주의자나 민족주의자나 파시스트 나치나 레닌주의자나 스탈린주의자 등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 사고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중 어느 것이 경제발전을 가장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경제발전이 필요하다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20세기의 이들 주요한 이데올로기 간에 의견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의 이데올로기적 성질은 불투명하여 알아채기 매우 어렵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 혹은 객관적인 필요성이라는 식으로 경제발전을 생각해왔던 것입니다.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거꾸로 그만큼 이데올로기로서 성공했다, 사상으로서 패권을 쥐고 있었다는 실증이기도 합니다.

🔖 경제제도를 민주화하는 과정의 첫 걸음은, 경제적인 결정이라고 말해지는 정책결정의 대부분이 실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결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이 결정, 이 정책은 정치적이라고 말하는 경우, 즉 그것은 전문가의 결정사항이 아니라 보통의 시민, 인민이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변함없이,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어오고 있다는 역사적 결정론이 아니라, 선택은 가능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전문가에게 위임해서 해결될 기술적인 선택이 아닙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가치판단을 동반한 선택이며, 살아있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정치적인 선택이라는 것은 그러한 선택을 말합니다.
경제의 반민주적인 측면의 하나는 이 점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논의해서 결정해야 할 선택을 선택할 수 없게 합니다. 결정론적인 역사과정의 결과이기 때문에 아무도 선택할 수 없다, 이것은 운명이다, 하는 것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공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가 의논해서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객관적인 과학'에 의해 결정하고, 그것을 실현시킨다. 그러한 반민주적인 힘이 경제에는 있습니다. 본래 선택해야 하는 것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으로 바꾸어버리는 힘 말입니다.
(...) 비행장을 만드느냐 만들지 않느냐, 산호초를 파괴하느냐 파괴하지 않느냐, 도로를 넓혀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을 파괴해서 자동차사회로 만드느냐 않느냐. 자동차사회로 된다는 것은 운명에 의해 이미 결정된 게 아닙니다. 자동차사회가 되지 않게 한다는 선택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경제의 민주화라는 것은 그러한 것을 결정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좀더 큰 문제를 말한다면, 이제 경제성장을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자연환경을 파괴하더라도 어쨌든 경제성장을 계속할 것인가, 혹은 제로성장으로 경제성장을 멈추고 이제부터는 자연환경을 지키거나 자연을 돌보는 정책을 할 것인가 어쩔 것인가. 그것은 미리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의논하면서 생활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결정하는 것 - 그것이 가능해야 합니다.